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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 la · la · la · la Love Song~"
혹시 위 내용의 가사가 들어가는 곡을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일본의 유명 드라마의 OST로 일본의 90년대를 풍미했던 곡 중 하나입니다. 이렇게만 보면 생소하시죠? 아마 유튜브 플레이리스트에 익숙한 분들은 스치듯 한 번쯤 들어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싱어송라이터인 백예린 씨가 커버하며 유튜브에서 한창 화제가 되었었거든요. (원곡에 못지않게 커버송이 매우 좋으니 유튜브에서 한 번쯤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그런데 이 노래가 처음 발매되었을 적 모두가 열광하게 되었던 것은 단순히 곡의 힘만은 아니었습니다. 바로 드라마 '롱베케이션'이 당대 일본에서 롱바케 신드롬을 일으킬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던 드라마이기 때문입니다. (롱바케 신드롬: 월요일에는 20-30대 직장인 여성들이 드라마를 보기 위해 거리에서 사라진다는 의미를 지칭하는 신조어)
열광 이유
드라마 롱베케이션은 1996년 4월에서 6월까지,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방영한 드라마입니다. 방영 시기에 맞게 드라마에서도 초여름의 배경을 그리고 있죠. 싱그러운 녹엽과 어우러지는 청춘의 방황, 사랑, 꿈에 대한 이야기를 여름의 눅진함을 통해 표현합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주인공 '미나미'가 결혼식 당일, 예비 신랑인 '아사쿠라'에게서 '정말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받고 파혼 당하게 되면서 시작됩니다. 아사쿠라는 피아니스트이자 피아노 학원 강사인 '세나'의 룸메이트로, 아사쿠라가 사랑에 빠진 여인은 바로 세나가 소개해 준 직장 동료였죠. 결혼식에 등장하지 않는 아사쿠라를 찾기 위해 방문한 그의 집에서 그녀는 세나와 첫 대면하게 됩니다. 결혼 후 은퇴하려던 계획은 무산, 직업인 모델로서의 입지도 점차 밀려나고, 무일푼 상태가 된 그녀. 혼돈의 결혼식 당일 이후 지낼 곳이 없어진 미나미는 자신을 룸메이트로 삼아달라며 다시금 세나의 집을 찾게 됩니다. 자신이 직장 동료를 소개해 주지 않았더라면, 아사쿠라가 그녀를 배신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을 갖고 있던 세나 또한 그녀를 받아주게 되죠. 이렇게 둘의 동거 생활이 시작됩니다.
위로와 사랑
세나는 피아노과를 졸업했으나 매번 콩쿠르에서 떨어집니다. 피아니스트의 꿈을 위해 대학원 진학에도 도전했으나 그조차 쉽지 않아 동네 피아노 학원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죠. 안 그래도 내성적인데 자존감까지 떨어지고, 짝사랑하는 대학 후배에게는 제대로 대시해 본 적도 없습니다. 그의 은사에게도 '자네는 좋은 피아노를 치고 있다고 생각해. 단지 감정이 들어가 있지 않아.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무섭다고나 할까.'라는 말을 듣게 되죠. 자신의 미래와 사랑에 대한 이상과 현실 속에 방황하면서,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고 스스로 끌어안는 외로운 인물입니다. 반면 미나미는 시원시원하고 통통 튀는 언변으로 세나에게 늘 파격적인 인상을 주는 캐릭터로, 겉과 속이 투명하기에 늘 걱정 없을 것만 같은 천진한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런 그녀도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 삶 앞에서 실의에 빠지곤 하죠. 세나는 "어떤 걸 해도 안 될 때가 있잖아. 그럴 때는... 신이 주신 휴식이라 생각하고 흐르는 대로 몸을 맡겨 봐."라며, 진심을 다해 조언합니다. 서로가 주저앉을 때 손을 내밀어 주며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미나미와 세나. 둘은 점차 서로에게 스며들고, 사이에 움튼 사랑은 여름의 잔잔한 바람을 맞으며 커지기 시작합니다.
여름의 드라마
드라마는 초여름과 늦여름 그 사이의 습하지만 너무 덥지는 않은 시기의 풍경을 기반으로 인물 간의 잔잔한 관계를 그리고 있습니다. 머릿속으로 이미지를 그려보면 마치 5~6월의 한강 나무 그늘 아래에서 맞이하는 산들바람이 떠오릅니다. 드라마 내 인물 간의 관계에서 뜨겁고 열정적으로 넘어가는 사랑이 아닌 머리칼을 살살 간질이는 미풍 같은 사랑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죠. 덕분에 나뭇잎이 연한 초록으로 물들기 시작할 때 이 드라마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름이 아닌 계절에 보게 되면 괜히 손해 보는 느낌이기 때문에, 필자를 포함해서 여름까지 묵혀두었다 보는 팬들도 존재하죠. 여름에 보지 않으면 아쉬운 드라마, 롱베케이션은 지금이 시청하기에 딱 적기가 아닐까 싶습니다.